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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학생이라고 학교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 밖이 문제일 뿐

 당신은 학교에서 듣던 ‘진로와 직업’ 수업을 기억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 대부분은 비슷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직업 흥미 검사지를 나눠 받고, 관심 있는 직업에 동그라미를 친 뒤, 가장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을 적는다.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모두들 꿈을 가져라’와 같은 말로 수업이 끝난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많은 것을 비워 둔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정당한 요구이고 어디부터가 침해인지, 그리고 그 경계가 무너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말하지만, 정작 이미 시작된 노동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참 기이한 장면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내에서의 ‘노동’은 언제나 미래형의 개념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이었고, 준비만 하면 언젠가는 잘 흘러갈 것처럼 다루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막연하게 미뤄두기에는, 어떤 학생들에게 노동은 이미 미래가 아닌 현재형이다.

   이미 수많은 청소년들이 학교 바깥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실습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로, 혹은 방과 후와 주말을 쪼개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말이다. 이들은 ‘경험’이라는 말로 포장된 노동의 현장에 충분한 설명 없이 내던져지고 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위험한 작업을 거절하지 못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례는 더 이상 특수하지 않다. 현실의 사회는 청소년에게 일을 시키면서도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청소년 노동권 침해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알려주지 않기로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청소년 노동 문제를 그저 경험의 일부, 성장의 과정으로 포장하는 언어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려는 일은 분명하다. 노동의 현재형을 살아가고 있거나, 곧 그 현실 앞에 서게 될 학생들에게 노동은 준비 없이 뛰어들어도 되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 권리는 나중에 배우는 부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다. 알았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일들, 몰라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푸른촛불을 통해 맡고자 하는 역할이다.

   우리는 푸른촛불이다. 이름의 ‘푸른’은 청소년의 ‘청(靑)’에서 왔다. ‘청’소년들에게 어둠에 익숙해지라고 말하는 대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불을 켜주고 싶다. 청소년이 일하는 사회라면, 그 권리 또한 같은 속도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최소한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과하다고 느껴진다면, 문제는 우리의 요구가 아니라 그 기준의 형성이 너무 오래 미뤄져 왔던 사회에 있을 것이다. 푸른촛불은 침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에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고, 개입하고, 또 교육할 것이다.

청소년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사회 속에서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낭만적 패기와 현실적 연대가 함께하는 노동권 보호 문화 확산.

푸른촛불 비전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 소년공 등 청소년 노동자가 겪는 부당한 노동 환경과 위험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 증언을 듣고, 연대하며,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와 제도권에 실질적으로 전달되도록 행동한다.

푸른촛불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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